1.영화만큼 그에 대한 글을 쓰기도 쉬운 매체는 없을 것이다. 단순히 접하기 쉬운 것보다도, 많은 사람들의 또 수많은 말들이 허용되고, 또한 수많은 말들을 해야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출 방식이 어떻느니 스토리가 어떻다느니 이것의 의미는 어쩧다느니, 어쩔 때는 대중성을 잣대로 어쩔 때는 예술성을 잣대로, 솔직히 그 두가지의 명확한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서도. 어쩔 때는 굉장히 간단한 영화를 두고서도 심각하게 복잡해지는 리뷰들이 넘치고, 또 어쩔 때는 복잡한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영화를 두고서도 최대한 간단하게 이해하려는 리뷰들이 넘쳐난다. 아무 기준도 없으면서도, 기준을 세우려고 노력하고, 사실 글이란 것에 대해 그것이 필요없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매체를 두고서도 또한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장면들은 이해되고 다시 글로 정리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그 영화들이 주는 의문을 정리하고, 그 의문에 갇혀있던 시간들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그들은 영화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즐거웠거나, 배웠을 것이다. 그것이 잘된 영화라면 그 장점을, 그것이 나쁜 영화라면 그 단점을. 영화가 자신을 위해 쓰이도록 하는 일, 또는 적어도 그 일에 대해 확신을 가지는 것은 리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을 의문으로부터 풀려나게 해준다. 의문을 더 만들어내지 않는 그 대답으로부터, 무언가를 이해하는 것은 더 이상 복잡하지 않게 된다.


나는 이 때문에 타인이 진짜로 살았던 삶을 함부로 영화화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흔히 그것들은 복제되고 잘라지며, 또 다시 글 속에서 박제되어 그 삶을 살아보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상황들에 대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이해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은 누군가의 삶이라는 미지의 영역에서 벗어나, 산업의 산물로, 소비물로, 비싼 골동품같은 장식들로 다른 누군가에 의해 박제된다. 답은 있다. 없었어도 이미 각자의 답이라는 형식으로라도 있다.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더 이상 복잡한 일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이해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도 분명 내 나름대로는 이해한 것이다.



2.똑똑하면 똑똑할수록 무언가에 대해 비판하려고 시도한다는 말은 익히 많이 들어왔다. 아마 비판하는 것이 높은 지능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기 보다는, 비판하면은 똑똑하게 보인다는 어릴 적의 습관같은 것일 것이다. 감독은 많이 만들어봐야 1년에 하나씩만 만들어도 엄청난 다작이지만, 관객에게 1년에 한편 영화를 본다는 것은 영화에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이나 하는 일일 것이다. 비교는 그것을 하는 사람들을 우월하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비교를 당한다는 것은 어쨌든 어떤 기준을 잣대로 삼아 평가당한다는 것을 말한다. 덕분에 관객들은 흔히 자신들이 영화보다 훨씬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삶을 박제해서 필름에 옮긴다는 것은 실제로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더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다. 모든 영화는 허구지만, 그것이 SF장르라도 분명히 삶의 어떤 요소들을 반영한다. 삶을 반영한다는 것, 이것이 말해주는 바는 어떤 글이 단순히 쓰이는 것보다, 그 글을 쓰게 할 수 있는 동기나 그 글로 적혀야 하는 의미들을 생각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점이다. 만약 내가 글로만 옮겨지는 기준에 대해서 그것을 잣대로 어떤 것들을 평가한다면 그것은 훨씬 수월한 일이다. 글을 글로 옮기는 것은 단순한 복제에 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떤 잣대에 다른 것을 평가하는 것을 이해하는 행위로 받아들일 때, 사실 "이해한다"는 이 말은 더욱 더 심오한 뜻을 지닌 것으로 봐야 한다. 특히 영화를 통해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깊이에 있어서 어떤 리뷰도 능가할 것이다.



3.따라서 기준들이 세워진다. 영화에는 그것이 기존에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던 기록들에 대한 장르적 기준이 있고, 연출에 기준이 있고, 각본과 연기에 기준들이 있다. 단순히 그런 기준을 안다는 것이 곧 영화를 아는 것이라면, 그것은 영화를 잘 찍게 해주지도, 또한 영화를 잘 이해하게 해주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그런 지식들이 그에 대한 평가를 수월하게 만들겠지만서도, 그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단순히 쓸 무언가가 있다는 것 따위 정도의 말일 것이다. 본질적으로 그것들은 단순한 복제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드러내는 것은 역사들에 대한 존경인 척 하는 나태함 정도일 뿐이다.


하지만 이 복제에 대해서, 이 복제를 하면서도 잡힐 수 없는 무언가를 잡아내는 것. 영화는 분명히 삶에 대한 복제이면서도, 복제를 필요로 하면서도 복제될 수 없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잡아내려고 한다. 하물며 그것을 글로 이해하는 행위에 있어서야 더 말할 것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영화는 누군가의 삶 앞에서 겸허해진다. 그것은 자신이 자신 자체로 표현하기 위해 복제해야됨을 알면서도, 자신이 담아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들 안타까움들이 있다. 그것이 단순히 규정되기 힘든 의미들에 대하여, 장면들로서의 영화라는 매체를 선택하는 까닭이 될 것이다. 하물며 영화에 대한 글이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것이 적을 수 없는 것들을 적기 위해서 끊임없이 적게되는 것에 불과하다.


어떤 매체도 없이 그 어떤 의미를 드러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마 삶 또한 이러한 매체들의 도움 없이는 결코 그 의미를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또한 영화와 영화에 대한 글쓰기는 단순히 겸허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겸허할 필요가 없는 글들은, 정작 자신의 대상이 되는 것 앞에서 끝없는 겸허함을 보인다. 그것이 글을 쓰게 하는 동기가 되고 의미가 되는 것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겸허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 서로 겸허해하는 것. 결국 흔히 리뷰라고 불리며 사용되는 매체들은 이 모든 것이 반대가 된 것이다. 겸허해야하는 것들이 더 이상 겸허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영화든 글이든. 리뷰에 대해 리뷰하는 것, 진짜로 겸허할 필요가 없는 것은 이럴 때만 허용되는 것 같다.

Posted by Joshua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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