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날씨가 추워집니다.

날씨가 추워지니, 제 머리속에 1차원적인 연상력에 "스노우 패트롤"(Snow Patrol)이 떠오릅니다.

밴드이름이 그래서 그런가, 추울 때 듣기 좋은 음악들이 많습니다. 다시 말씀드려, 따뜻한 음악이 많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들이 발표한 노래를 더 자주 소개해보고, 밴드에 대해서도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만큼 스노우패트롤은 사실 언제 들어도 좋은 명곡들을 굉장히 많이 발표한 밴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밴드 음악을 듣고, 날씨까지 추워지니 이번 겨울눈이 기다려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더없이 차가울 때, 오히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얼마나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겨울엔 그 어떤 겨울보다 마음으로 따뜻한 겨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뭔가에 집중하고 싶을 때,

머리 속에 잡념들을 떨어뜨리려고 일부러 신난 음악을 먼저 듣곤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 노래와 함께 잡념들을 떨어뜨려보고자 합니다.

여러분들도 신난 노래와 함께 잡념들 떨어뜨려보시길 바라고,

추워지는 날씨에 더욱 따뜻한 마음 많이 전달받으시길 바랍니다.





You're angry but you don't know how to be that yet

넌 화가 나있지만, 도대체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르지.

It seems too much went wrong and all at once

그건 아마도 한번에 많은 것들이 잘못되었기 때문일 거야.

Resistance seems impossible from down this low

그렇게 침울해지는 것들로부터 반항할 수 없는 것만 같아.

And surely no one else can feel like this

그리고 확실히 그 누구도 당신처럼 느끼지 못할거야.


But on the streets

하지만 거리에서,

You can see them gathering

넌 그들이 모이는 것을 볼 수 있어.

And in your heart

그리고 네 가슴 속에서,

You know they feel like you do

그들도 너와 같이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어.


Sound imposed and volume

음악이 켜지고 들려올 때,

Hands just reaching other hands

다른 손들에 닿는 손들이 있어.

This is almost over

이건 거의 끝났어.

I said almost over

내가 거의 끝났다고 하잖아.


Friends and foes and princes

친구들과 적들, 그리고 왕자들.

Are all just human in the end

그 모든 사람들은 결말에 다다른걸까?

This is all damn simple, yeah

이 모든 것은 굉장히 간단하다고.

It's all damn simple

이건 굉장히 간단한 거야.


So standing in the steady throne of restless oath

끊임없는 맹세의 확고한 왕좌를 대신해,

You don't feel like an outcast anymore

넌 더 이상 따돌림받는 사람처럼 느끼지 않아.

And something deep inside of you has waken up

그리고 네 안 깊숙히 있던 것이 깨어나기 시작했어.

And you know that nothing's gonna be the same again

그리고 넌 모든 것이 똑같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아.


But on the streets

하지만 거리에서,

You can see for what seems miles

넌 저 멀리 있는 것같은 것들을 찾고 있지.

Because in your heart

왜냐하면 네 가슴 속에는,

You know they feel like you do

너도 그들도 너와 같이 느낄 거라는 걸 알고 있거든.


Sound imposed and volume

음악이 켜지고 들려올 때,

Hands just reaching other hands

다른 손들에 닿는 손들이 있어.

This is almost over

이건 거의 끝났어.

I said almost over

내가 거의 끝났다고 하잖아.


Friends and foes and princes

친구들과 적들, 그리고 왕자들.

Are all just human in the end

그리고 결말에 다다른 모든 인간들.

This is all damn simple, yeah

이 모든 것은 굉장히 간단하다고.

It's all damn simple

이건 굉장히 간단한 거야.


I won't be still

나는 머물러 있지 않아.

It may not again

그건 다시 일어나지 않을지도 몰라.

You don't think it will

너 또한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But it will

하지만 분명 그럴거야.

 

Sound imposed and volume

음악이 켜지고 들려올 때,

Hands just reaching other hands

다른 손들에 닿는 손들이 있어.

This is all damn simple, yeah

이 모든 것은 굉장히 간단하다고.

It's all damn simple

이건 굉장히 간단한 거야.

Posted by Joshua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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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영화 음악까지 락음악이라고 하면, 도대체 뭐가 락 음악이 아니겠냐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텐데. 아마 "톰요크가 라디오헤드의 멤버이고, 라디오헤드가 락이기 때문에 이런 분류가 가능할까?" 라고 누군가가 물어보면 그것도 어느정도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무지 락이란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없고, 명확하게 정의하는 순간 그 사람이 말하는 게 락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이 일종의 억지라고 하는 이 이야기는, 오히려 락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맞닥뜨리게 될 비판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은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락은 클래식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톰요크가 영화음악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이미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클래식이 아닙니다. 당신의 교양 따위나 정서의 함양 또는 "저 작곡가와 연주자의 실력은 어떤 기준에 의해 너무나 대단하다!" 하면서 서로 칭송이나 떠들어대야하는 소위 부르주아들의 그런 구역질나는 이야기들이 아닙니다.





2.시스템은 매우 간단합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더욱 심합니다. 제한된 시장과, 제한된 배급사, 제한된 극장들. 투자자들은 돈이 되는 몇 개의 영화만을 극장에서 상영해 수익을 극대화 하고자 합니다. 돈이 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본다는 것이고, 당신이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은 그 영화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영화였다는 뜻입니다.


당신은 영화를 보고 박수를 칩니다. 누군가는 사람들에 어울려 각본부터 연출까지 모두 다 쓰레기인 영화에 "천만관객 화이팅!"이라고 외칠 지도 모르겠습니다. 갈증이 느껴져서 이내 영화를 스스로 찾아보기 시작할 땐, 이내 기존 영화에 너무나 길들여진 뒤입니다. 아니, 그런 갈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 더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관객수가 많다고 좋은 영화인 것이 아닌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둘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둘은 정확히 반비례의 관계입니다. 단순히 인간 혐오에 걸려서 내뱉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서 저급한 것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더 이상 담을 내용이 없을 수록 단조로워지고, 저녁에 발 씻고 보는 드라마 따위 같아질 때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뜻입니다.


영화가 단지 오락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리고 내가 수많은 저 사람들과 취향이 같다는 느낌에서 받는 어떤 즐거움이라면, 우리는 영화를 장르적으로 나눌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런 기준에서 나눠봐야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3.특히 영화엔 자본이 필요합니다. 글보다, 춤보다, 왠만한 음악들보다, 그 어떤 예술 매체들보다 더 많은 자본력이 투자됩니다. 이걸 보고 누군가는 영화가 '협력의 산물'로서 그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글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한낱 마녀몰이와 마녀처형과 같은 저질스러운 볼거리면 몰라도, 그 누구도 예술을 투표하듯이 만들지 않습니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은 그 때문에 우리나라에 수많은 영화들이, 단지 독립영화라는 한계 내에서 제대로 된 연출도 못 해보고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영화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영화 취급을 받지도 못할 것입니다.


죽느냐, 아니면 사는 것만도 못하게 사느냐. 그 기로에서, 애초에 영화를 만들 자격도 없는 자들은 오늘도 쓰레기같은 영화들을 만들어대며 서로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쁘띠 브르주아들의 칭송을 받아댑니다. 네. 저는 이런 식상할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반복해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식상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네 맞아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톰요크가 음악감독을 맡은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개봉하지도 않는다는 것에 적어도 화라도 나있는 척 하고 싶은 것입니다. 외국에선 찍을 수 있기라도한데, 우리나라에선 애초에 만들 생각은 커녕 만들어진 것을 상영할 생각도 없습니다.


저보고 한국을 혐오하는 사람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우리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더 화가 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외국 가서 살라는 말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애초에 이 글이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써지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잘 압니다. 도무지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에라도 최소한에라도, 만드는 것이든 상영하는 것이든 극장으로 수익을 벌고 있다면, 발이나 씻고 보는 영화가 아닌, 수많은 영화인들이 지키고 싶어했던 '영화'라는 것에 대해서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아닌가요?


네 저는 딱히 자본주의를 거부할 생각이 없기에, 이렇게 비난할 바엔 제가 돈이 많아서, 극장을 사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따라서 오히려 불평만 하곤하는 것입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가 아니라, 저는 달걀밖에 없던 것입니다.


아쉬운대로, 음악부터 먼저 들어봅니다.



This is a waltz thinking about our bodies

이것은 우리 몸에 대해 생각하는 왈츠입니다.

What they mean for our salvation

우리의 구원에 그들은 무슨 의미일까요?

With only the clothes that we stand up in

단지 우리가 걸치고 있는 옷들과

Just the ground on which we stand

우리가 서있는 이 땅뿐인데,

Is the darkness ours to take?

어둠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인가요?

Bathed in lightness, bathed in heat

빛과 따스함을 쬐며,

 

All is well, as long as we keep spinning

우리가 계속 돌고 있는 동안은, 모든 것이 괜찮아요.

Here and now, dancing behind a wall

이곳 그리고 지금, 벽 뒤에서 춤을 추고 있는 동안,

When the old songs and laughter we do

오래된 노래들을 부르고 우리가 웃음 짓고 있는 동안,

Are forgiven always and never been true

언제나 용서받고 한 번도 진실 된 적은 없었어요.

 

When I arrive, will you come and find me?

제가 온다면, 당신은 날 찾아주실 건가요?

Or in a crowd, be one of them?

아니면 관중들 중에서 하나가 되어버리실 건가요?

Wore the wrong sign back beside her

그녀 뒤에 잘못된 표시를 지워요.

Know tomorrow's at peace

내일은 평온할 것을 알아요.



넋두리를 피고 음악을 들으니 마음이 잔잔해집니다.


제 블로그를 방문해주시고 제 생각을 읽어주셨다면 감사합니다.

Posted by Joshua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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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브릿팝 밴드 중에서도 서정적인 밴드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트래비스에 대해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서정적이지만 결코 우울하거나 어둡거나 슬프지도 않은, 굉장히 감미롭고 낭만적인 곡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물론 몇몇 굉장히 우울한 곡을 들을 수도 있긴 하지만, 그 곡들도 하나같이 명곡들입니다. 하지만 역시 트래비스하면 낭만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노래들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정말이지 연인과 같이 들으면 정말 좋을 것 같은 노래들입니다.


 



네 맞습니다. 이 뮤직 비디오에는 코미디 영화 배우이자 감독으로 유명한 벤 스틸러(Ben Stiller)가 카메오로 출연했습니다. 그래서 깨알 같은 재미가 있습니다. 이 음악은 가사부터 너무나 감미롭습니다.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우(Glasgow) 출신인 밴드, 트래비스는 보컬인 프란 힐리(Francis Healy), 기타에 앤디 더롭(Andrew Dunlop), 베이스 더기 패인Douglas Payne Jr.), 드럼을 맡는 닐 프림로즈(Neil Primrose)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영국에서 활약하는 밴드들이 그렇듯이 그들도 인디 밴드로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전 밴드 이름은 러닝 레드나 글래스 어니언 같은 이름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정하게 된 트래비스란 이름은 그 유명한 명감독, 빔 벤더스(Wim Wenders)가 연출한 파리, 텍사스란 영화에서 해리 딘 스탠튼(Harry Dean Stanton)이 연기한 주인공 이름이 트래비스였다고 합니다. (저도 예전에 이 영화를 보고 여운이 가슴 깊이 남았던 기억이 있는데, 조만간 이 곳에 리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글래스고우의 클럽과 바에서 공연하던 트래비스는 영국에 진출하여, "Go! Discs"의 오너였던 앤디 맥도날드와 개인 계약을 맺게 되고, 1“Good Feeling"을 발매함으로써 메이저 밴드의 길로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특히 2"The Man Who"를 발매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이 앨범은 UK차트 1위에 올랐고, 영국내에서 300만장 이상 판매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3"The Invisible Band"까지 UK차트 1위에 오르면서 성공한 밴드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굳혔습니다. 그들의 영국 내에서 명성은, 브릿 어워드도 두 번 수상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중간에 드러머가 수영장에서 다치는 등 우여곡절도 있었고, 잠시 활동을 멈추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행히 회복하고, 그 이후에도 꾸준한 앨범 활동과 꾸준한 호평으로, 영국을 비롯해 한국에서도 굉장히 사랑받는 밴드로 계속 활동을 해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음악은 듣는 사람에게 절대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대중성을 지니면서도 전해주는 감정의 감미로움은 정말이지 순수함이 계속 느껴진다고 할 정도로, 진실됨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은, 미국으로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 몇 몇 밴드들이 대중성을 확보해나가면서, 다분히 미국적인 스타일에 길들여진 것에는 굉장히 상반된다고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 비해 트래비스는 감미로운데 너무나 순수하고, 그러면서도 언제나 꾸준히 그 자리를 지켜주는 굉장히 예쁜 자연같은 밴드입니다.





요즘은 보컬인 프란 힐리가 저렇게 수염을 길렀는데요, 언뜻 보면 라디오헤드의 톰요크의 스타일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하지만 저 순수한 웃음, 또랑또랑한 눈망울이 반짝거리는 것을 보면 이내 프란만의 매력이 뭔지 알게 될 거 같습니다. 2008년 펜타포트, 2016년 지산 밸리에도 오는 등 내한 콘서트의 기회도 자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언제 한국에 오면 직접 가서 그 음악을 들어보는 기회를 가지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이 밴드는 그렇게 성공한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겸손한 자세를 가지는 밴드라고 하니 음악을 듣고도 엄청 좋아했는데, 호감이 계속 들게 하는 밴드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아무쪼록 꾸준한 활동으로 계속해서 트래비스의 좋은 음악들을 많이 듣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발매한 트래비스의 앨범은 다음과 같습니다.


Good Feeling (1997)

The Man Who (1999)

The Invisible Band (2001)

12 Memories (2003)

The Boy With No Name (2007)

Ode To J.Smith (2008)

Where You Stand (2013)

Everything At Once (2016)

Posted by Joshua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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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음악을 들으며 한 생각을 풀겠습니다.


태풍이 왔습니다. 우리나라 동해상을 지나고 있는데 오랜만에 비가 있는데로 내립니다.

이것도 겨우 이틀밖에 안 된다는데 조금은 비가 더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우울해서가 아니라, 모든게 다 싹 씻겨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여름엔 하늘이 땅에 대해 저주라도 한 건지 비가 너무 안 내렸습니다.

그래서 모든 게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씻겨나간다는 것은, 하늘이 허락해서가 아니라 그가 못 참고 내리는 비들에 의한 것입니다.


까짓거 비를 안 내려준다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나,

지금까지 이 모든 묵은 것들을 얼마나 참아낼 수 있나,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버텨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답답합니다.


비가 오랫동안 내리지 않았고 여전히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이 정도 비에 거리의 묵은 때들은 그냥 축축해져 그 자리에서 굳어버릴 것입니다.





아침부터 프랑스 영화를 몇 개 뒤적이다가, 언제부턴가 저 식상하게 느껴져버린 저 태도들.

반항이니, 발전이니, 자유니 하는 것들. 이제는 젊음의 이름을 필요로 한다고 해서는 안되는 것들.


결국엔 그 언저리에만 돌고 있으면서, 똑같은 말들이, 평가들이, 도대체 왜 알아야될지 모르겠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되었는지, 똑같은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전통들.


더 식상하게는 개성이니 하는 것들.

그 누구도 이런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개성이란 것을 가지고 있을만한 사람들도

다 사라져 없어버려 도무지 찾을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은,

마지막 90년대의 폭발이 그만큼 인상깊어서 였을지도 모릅니다.


부패한 근대가 어쩔 수 없이 일으킨 폭우처럼,

20세기 후반은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묵은 때들은 그 자리에 고여서 굳어버리고는 다시 썩어버리겠지요.


무엇을 기대하든, 무엇을 비평하든.

말들은 시선들을 기대하고, 시선들은 영혼을 잃은 것마냥 따라다닙니다.

도대체 누가 그런 말을 하고, 도대체 누가 그런 시선을 가졌는지도 모릅니다.

도대체 그것들에 무슨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훌륭한 것들이 모조리 다 하나의 박제처럼 싸구려 비평들에 전시될 뿐입니다.


쓸려가야 할 것들은 오로지 그런 시선들인데,

그 시선들에 의해 세상이 썩어나갑니다.

락엔 무슨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가 비평이라니요?




취향이니 선호니, 모이면 기준이 되고, 정설이 되고,

같이 따라가는 사람들이 다시 또 모여 인기가 되니 뭐니. 성공이니 실패니.

그걸 버텨낼 힘이 없다는 건 또 뭐고. 이 훌륭한 음악들 앞에서 전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음악을 얼마나 들었든간에, 맞다느니 틀렸다느니,

훌륭하다느니 퇴보했다느니 그건 또 다른 소리인 겁니다.


21세기, 보기만 해도 두근거릴만큼 이 새로운 단어 앞에서, 그리고 그 안에서,

오히려 개성이란 것은 말할 수 없는 신비나 새로운 세계의 이정표가 아니라,

이빨만 커다란 멍청한 돼지들의 취향들로 이루어질 뿐입니다.

 


그래서 난, 21세기의 모든 성공과 실패 앞에서

아주 자주 이해가 되지 않는 꼴들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가사/해석


And you see, I kind of shivered to conformity

그리고 너는 보고 있지, 내가 순응하기 위해서 얼마나 떨고 있는지.

Did you see the way I cowered to authority

넌 내가 권위 앞에 어떻게 엎드려 있는지 보고 있어?

You see, my life, it's a series of compromises anyway

넌 보고 있어, 내 인생을, 그건 어쨌든 타협의 연속이었어.

It's a shame, and I'm conditioned to accept it all, you see

그건 부끄러운 일이야, 난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정해져있어, 넌 보고 있잖아.

(More) than I had before

내가 가지고 있던 것들보다 더.

(More) than I've presently got

내가 지금까지 갖고 있던 것들보다 더.

(More) than I'll ever use up

내가 써버릴 것들 것보다 더.

(More) than I really need

내가 필요한 것들보다 더.

(More) than I had before

내가 전에 가지고 있던 것보다 더.

(More) than I've presently got

내가 지금까지 갖고 있던 것들보다 더.

(More) than I'll ever use up

내가 써버릴 것들 것보다 더.

(More) than I really need

내가 필요한 것들보다 더.

(More) than I had before

내가 가지고 있던 것들보다 더.

(More) than I could possibly spend

내가 써버릴 수 있던 것들보다 더.

(More) than I'll ever use up

내가 써버릴 것들 것보다 더.

(More) than I really need

내가 필요한 것들보다 더.

(More) than I had before

내가 전에 가지고 있던 것보다 더.

(More) than I could possibly spend

내가 써버릴 수 있던 것들보다 더.

(More) than I'll ever use up

내가 써버릴 것들 것보다 더.

(More) than I really need

내가 필요한 것들보다 더.

It's more than I can spare

내가 쓸 수 있는 것들보다 더.

My religion is caged

내 신념은 갇혀있어.

 

Safe from progress, purgatory I know

전진하지 않고 안전에 머물러, 내가 알고 있는 지옥.

How does this affect me

이것들이 내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Emotionally affect me

감정적으로 내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들.


Will they let me go

그들이 날 내버려둘까?

Will they let me go

그들이 날 내버려둘까?

Will they let me go

그들이 날 내버려둘까?

Equilibrium imbalanced again

평형은 다시 무너져가.

 

I feel no pain

난 고통스럽지 않아.

I feel no...

난 고통스럽지...

I feel no pain

난 고통스럽지 않아.

The Jabberwocky haunts me, in my memory it's caged

무의미한 말들이, 갇혀버린 내 기억 속에서 날 따라다녀.

 

I feel no pain

난 고통스럽지 않아.

I feel no...

난 고통스럽지...

I feel no pain

난 고통스럽지 않아.

But if you punched me in the stomach then I'd feel it again

만약 네가 내 배를 세게 날려준다면, 어쨌든 난 다시 느낄거야.

 

Life is a compromise anyway

삶은 어쨌든 타협일 뿐이야.

Life is a compromise anyway

삶은 어쨌든 타협일 뿐이야.

Life, it's a compromise anyway

, 그건 어쨌든 타협일 뿐이야.

Life, it's a compromise anyway

, 그건 어쨌든 타협일 뿐이야.

And it's a shame, and I'll accept it all

그건 부끄러움이고, 난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일 거야.

 

And you see, I kind of shivered to conformity

그리고 너는 보고 있지, 내가 순응하기 위해서 얼마나 떨고 있는지.

Did you see the way I cowered to authority

넌 내가 권위 앞에 어떻게 엎드려 있는지 보고 있어?

You see, my life, it's a series of compromises anyway

넌 보고 있어, 내 인생을, 그건 어쨌든 타협의 연속이었어.

It's a shame, and I'm conditioned to accept it all, you see

그건 부끄러운 일이야, 난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정해져있어, 넌 보고 있잖아.

Posted by Joshua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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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후부터 비 소식도 알려진 김에, 어둡지만 결코 어둡지 않은, 오히려 부드럽고 감성을 찡하게 울리는 그런 밴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엘보우”(Elbow)입니다. 저는 특히 이 밴드의 보컬인 가이 가비(Guy Garvey)”의 노래는 제가 들어본 락밴드 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굉장한 실력을 자랑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실력이 단순히 기교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한에서, “가이 가비의 목소리에는 분명 그만의 감성을 듣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그런 진실성이 묻어납니다.



 

엘보우는 영국의 맨체스터 근방에서 결성된 얼터너티브 락 밴드입니다. 멤버는 Guy Garvey(보컬), Mark Potter(기타), Pete Turner(베이스 기타), Richard Jupp(드럼), Craig Potter(키보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990년부터 모였으나 총 세 번 이름을 바꾼 뒤에, 1997년부터 엘보우로 밴드 이름으로 정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엘보우라는 이름을 정하게 된 건, BBC 드라마인 "Singing Detective"에서 그 단어가 단어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대사를 들어서라고 합니다. 그 단어가 팔꿈치라니, 다소 이상하긴 하지만 밴드의 음악 자체가 너무 훌륭하다보니, 이제 엘보우라는 단어를 보면 팔꿈치 대신 이 밴드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활동을 시작하는 쯤엔 그 뛰어난 음악성으로 많은 레이블들에게 스카웃 제의를 받았으나, 기획사와의 갈등으로 메이저 데뷔가 점점 늦어졌습니다. 그러다 발표한 2001년 그들의 데뷔 앨범 “Asleep in the Back"2003년 발표한 ”Cast of Thousands“을 통해 그들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초기 앨범은 다분히 어둡고 우울한 톤의 음악이었지만, 점차 앨범 발표를 거듭할수록 단지 어둡다고만 할 수 없는, 그들만의 색채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점차 영국 내에서 소수의 매니아들 사이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던 중, 그들의 4집 앨범 "The Seldom Seen Kid"는 발표 직후 UK차트 5위에까지 오르고, 여러 상을 받는 등 그들의 이름을 영국과 유럽 전역에 알렸습니다. 이후 엘보우는 BBC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여 올림픽 주제가 “First Steps"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 밴드는 정말 오랜 무명시간을 덤덤히 버텨내었고, 그들의 이름이 알려지고 나서도 계속해서 자신들의 예술적 음악을 구축하는 그런 밴드입니다. 그래서 이 밴드를 아트록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7개의 앨범을 냈는데, 앨범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Asleep in the Back(2001), Cast of Thousands(2003), Leaders of the Free World(2005), The Seldom Seen Kid(2008), Build a Rocket Boys!(2011), The Take Off and Landing of Everything(2014), Little Fictions(2017)


리드보컬의 목소리가 굉장히 인상에 남는데, 그의 목소리는 굉장히 굵으면서 낮은 저음을 풍성하게 냅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노래는 굉장히 부드러우면서도 굉장히 섬세하기도 합니다. 한 편에서는, 대부분의 영국 밴드가 한국에 알려질 때 그러듯이, 이 밴드를 라디오헤드의 영향 하에서 바라보려는 시선도 있었으나 제가 보기엔 분명히 그 특색을 달리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케스트라를 동반할 수 있을 정도의 음악 자체의 장르에 대한 넓은 포용력과 클래식 악기의 구성, 어쿠스틱 사운드를 통하여 굉장히 풍부할 정도의 부드러움을 지니고 있는 밴드로 생각됩니다. 물론 저는 라디오헤드를 굉장히 좋아하기도 합니다.


아직 한국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만간 이런 좋은 음악을 많은 분들이 알게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Joshua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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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타노 다케시는 일본에서 영화 감독보다는 코메디언으로 더욱 유명합니다. 그것은 그의 영화가 실패했다기 보다는(물론 상업적으로 성공한 예는 드물지만), 그가 일본을 대표할 정도로 매우 성공한 코메디언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일본에 유학을 다녀온 친구에 의하면, 기타노 다케시를 코메디언으로 잘 알고 있는 일본 사람들도 그가 영화를 찍었다는 사실을 알면 간혹 놀라는 사람이 있다고도 합니다.

 

그는 1947년 도쿄도에서 한 페인트 집에서 태어나 전후에 험난한 시기를 모두 겪었고, 어머니의 추천으로 공대에 진학하였으나, 데모에 휘말려 학교에서 재적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력 때문에 제대로 된 곳에 취직할 수 없다가, 비트 기요시와 함께 투비트라는 콤비를 이루었습니다. 이후 그는 코메디언으로 대성하게 되어, 일본의 3대 개그맨(타모리, 아카시야 산마, 기타노 다케시)의 한 주축으로 손꼽히게 됩니다. 물론 그는 그러던 와중에도 여러 영화들에 출연하였으나 거의 조연이었고, 그 중에서도 류이치 사카모토와 데이비드 보위가 출연한 명작 전장의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Mr. Lawrence, 1983)에도 출연하기도 하였습니다.


 

2.

그러던 와중 원래 그가 감독을 맡은 최초의 영화, “그 남자 흉폭하다”(Violent Cop, 1989)에는 기타노 다케시는 원래 주연으로 캐스팅 되었었습니다. 하지만 원래 감독을 맡을 예정이었던 후카사쿠 킨지의 스케쥴 문제로, 배급사에서 감독 자리를 기타노에게 제의하면서 그의 감독 생활은 우연하게 시작하게 됩니다. 그는 이 영화를 위해서 각본을 굉장히 많이 뜯어 고쳤다고 합니다.


그 이후 그는 그의 독특한 폭력 미학을 가감없이 다음 영화인 “3-4×10”(Boiling Point, 1990)에까지 이어갑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소나티네, 하나비와 같은 어두운 배경을 가진 영화를 만들어냅니다. 한편 그는 그의 코메디언적 소질을 발휘하는, “모두 하고 있습니까”(Getting any?, 1995)와 같은 개그영화라든가, 기쿠지로의 여름(Kikujiro, 1999)과 같은 잔잔한 감동을 주는 영화, 그리고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돌스”, (Dolls, 2002) 같은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들도 만들어내는 등 다재다능하게 여러 주제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것은, 폭력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이지만, “기쿠지로의 여름과 같은 다른 영화들도 이에 못지않게 인정받은 수작들입니다.


 




3.

그의 영화의 특징은 매우 정적인 화면과 편집 구성과 같이 최대한 과장되지 않고 절제된 연출을 그 특색으로 합니다. 따라서 그의 영화를 보다보면 굉장히 길게 흐르는 침묵들, 정지되어 있는 인물들, 그리고 카메라 움직임 없는 롱테이크로 찍혀있는 장면들을 매우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그의 영화들에서 폭력은, 할리우드 영화에서와 같이 어떤 오락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물론 자토이치와 같은 진짜 액션영화를 찍기도 했지만요)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여있는 인물들의 상황을 통해, 오로지 그의 영화만이 전달할 수 있는 의미들을 관객에게 보여줍니다.

 

하늘과 특히 바다를 자주 담는 그의 영화에서 파란색은 자주 부각되어 팬들 사이에서, 기타노 블루(Kitano blue)라는 말로 자주 불리기도 합니다. (저는 영화가 시작하기 전 그의 영화사의 로고인 "K"의 파란색까지도 멋있습니다.) 동시에 그는 각본에서 편집, 연출까지 모두 자신이 떠맡는 작가주의적 지향의 고집이 (아주 심하게) 있는 감독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의 영화에는 그라는 한 인물이 굉장히 잘 투영되어, 기타노 영화는 기타노라는 하나의 장르로 분류해 부르고 싶을 정도입니다. 덕분에 그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는 기타노 사단(와나나베 테츠, 테라지마 스스무, 오스기 렌, 키시모토 카요코 등)은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너무나 친근하게 만나는 명배우들입니다. 우리에겐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음악을 자주 다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히사이시 조또한 그의 영화 음악을 거의 대부분 맡게 되면서, 영상과 굉장히 멋진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 또한 강조할만한 사실입니다.

 


4.

한편, 하나-비를 찍기 이전 1994년에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안면의 한쪽 근육이 마비되는 일을 겪었지만, 그가 사고를 견디고 찍어낸 하나-비는 세계적인 영화제인,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게 되면서 그는 세계적인 거장으로 우뚝 서게 됩니다. 사실 영화를 보게 되면서 자주 보이는, 그의 눈이 저절로 움찔거리는 듯한 모습은 그래서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 외에 에세이와 같은 책을 몇 권내기도 하였고 신문에 기고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중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 노트라는 책을 실제로 읽어보니, 그가 영화에서 보여주는 성격만큼이나 굉장히 직설적인 내용의 글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역시 감독에 대한 소개글은, 아는 사람들끼리 정리거리나 되지 거의 보여주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힘들게 썼지만도 아쉬움이 굉장히 많이 남는 포스팅이었습니다이 기타노 다케시에 대한 소개글은아래 영화의 리뷰를 하기 전에 잠시 맛보기 같은 포스팅이었기에그 아쉬움은 아래 영화들에 대한 리뷰로 달래보고자 합니다.

 


5.

 그는 감독을 맡은 작품외에도 다른 영화에도 꾸준히 배우로 참여해, 장난끼 가득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굉장히 무서운 아저씨 같은 포스가 있는 그의 또 다른 영화적 이미지와 함께 "배틀 로얄"이나 피와 뼈”(최양일, 2004)와 같은 영화에서 굉장히 강한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사실 에반게리온에서의 모습은 배역이 별로였지, 기타노 다케시는 멋졌습니다!) 차후에 기타노 다케시 영화에 대한 리뷰와 함께 최양일 감독의 영화들도 소개하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독작 :

 

그 남자 흉폭하다(Violent Cop, 1989)

3-4×10(Boiling Point, 1990)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A Scene at the Sea, 1991)

소나티네(Sonatine, 1993)

모두 하고 있습니까(Getting any?, 1995)

키즈 리턴(Kids Return, 1996)

하나비(Hana-bi,1998)

기쿠지로의 여름(Kikujiro, 1999)

BROTHER(2000)

돌스, (Dolls, 2002)

자토이치(Zatoichi, 2003)

다케시즈(TAKESHIS'2005)

감독만세!(Glory To The Filmmaker!, 2007)

아킬레스와 거북이(Achilles And The Tortoise, 2008)

아웃레이지(Outrage, 2010)

아웃레이지 비욘드(2012)

류조와 일곱 앞잡이들(8인의 수상한 신사들, Ryuzo And The Seven Henchmen, 2015)

아웃레이지 파이널(Outrage Coda, 2017)

Posted by Joshua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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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추석도 지나서 여름이 다갔다고 말하기 너무 쉬운 날들이 되어버렸다.


날씨가 쌀쌀한 것이, 가을을 타야되는데 가을을 탈 수 있는 힘도 없는 것 같다.


그 정도로 심각하게 무기력할 땐, 무턱대고 신나는 노래를 듣기 보다는 이렇게 절절한 음악을 듣는 것이 더 좋다.



분명 나한텐 절절함이라는 단어에 더 가깝지만, 이 음악이 슬픈 것이라고 느끼는게 나만은 아니겠지?


절절한데 음악은 또 디게 아름답다. 보고 있는 것마냥, 옆에 있는 것마냥.



The Cure의 노래는 듣는 사람에 따라 아 "엄청 우울하고 어둡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예전 친구들은 하나같이 이런 노래가 싫다고 했었다.



1976년에 결성된 밴드가, 2000년에 낸 앨범인데, 예전 전성기 때 감성을 하나도 잃지 않고,


오히려 더 예쁘고 아름다워져버렸다. 원래부터 나와 같이 이런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찾고 싶은게 아니라,


새로 들려주고 어떤지 물어보고만 싶다.



아니면, 바로 옆에서 이 노래 싫다고 하면 나도 이 노래 같이 싫어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옛날에 대한 후회에서 오는 부정, 자책들이 가사 곳곳이 드러나는데,


그것들 전부 아니어도 된다고 해주면, 이 노래는 정말 슬플 필요도 없이 아름답기만 한거잖아.



The Cure - The Last Day of Summer



Nothing I am

난 아무것도 아니고,


Nothing I dream

난 아무것도 꿈꾸지 않아.


Nothing is new

아무것도 새롭지 않아.


Nothing I think or believe in or say

난 아무것도 생각하거나 믿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아.


Nothing is true

아무것도 사실이 아니야.

 


It used to be so easy

한 때는 쉬웠을지 몰라.


I never even tried

난 심지어 노력도 하지 않았어.


Yeah, it used to be so easy...

한 때는 쉬웠을지 몰라.

 


But the last day of summer never felt so cold

그런데 여름의 마지막 날은 그렇게 춥게 느껴지지도 않아.


The last day of summer never felt so old

이 여름의 마지막 날이 그렇게 오래된 것처럼 느껴지지도 않아.

 


All that I have

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


All that I hold

난 모든 것을 쥐고 있어.


All that is wrong

모든 것이 잘못되었어.


All that I feel for or trust in or love

난 모든 것을 느끼거나 믿고 있거나 사랑하고 있어.


All that is gone

모든 것이 가버렸어.

 


It used to be so easy

한 때는 쉬웠을지 몰라.


I never even tried

난 심지어 노력도 하지 않았어.


Yeah, it used to be so easy...

한 때는 쉬웠을지 몰라.


But the last day of summer never felt so cold

여름의 마지막 날은 그렇게 춥지 않게 느껴져.


The last day of summer never felt so old

그런데 이 여름의 마지막 날이 그렇게 오래된 것처럼 느껴지지도 않아.


The last day of summer never felt so cold

이 여름의 마지막 날이 그렇게 춥지 않게 느껴져.

Posted by Joshua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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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에는 기라성같은 명감독들이 많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한명의 감독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나는 이 버닝이라는 영화를 보기 이전에도 항상 이창동 감독을 첫번째로 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물론 여기에서 영화를 보는 한명의 관객으로서 심판자라도 된 것마냥 차등의 시선을 두고,


여타의 감독이 그보다 덜 훌륭하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아마도 단지 내 성격탓일지도 모르는데,


나는,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색깔에 흡수되거나, 일면적인 주장을 결정해서,


동조를 해줄 사람을 구한다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의 눈치를 피하고 싶어하는 그런 종류의


'비겁함'과 '소심함' 내지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면에 숨어있는 우스꽝스러운 '폭력성'을 지니지 않았다.



오히려 그보다 더욱 조심스러워하고, 끝까지 내 의견을 숨기기에 더욱 미안해하면서도,


그럼에도 단순히 '어느 한 편'의 의견으로서 표출할 수 없는 종류의 말이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그런 성격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창동 감독은 내가 적어도 다분히 내 개인적인 한계로서


마음 편하게 제일의 감독이라고 꼽을 수 있는 것이다.


혹자는 여기서 누가 당신의 성격을 궁금해하겠냐고 따지고 싶겠지만은,


적어도 내가 여기서 위의 여러 볼품없어 보이는 글을 빌어 하고자 하는 말은


그의 영화에는 그런 종류의 '조심스러움'들이 있다는 점이다.




2.그런 점에서 그는 예술가로서 전통적인 덕목을 배워 지니고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그는 항상 예술가처럼 거리를 둔다. 어떤 일면적인 주장에, 어떤 정치색에, 어떤 동조들과 반대들에,


그리고 어떤 규정된 해석들과 영화라는 매체에 대하여, 메세지를 단번에 박아버리려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능성이 있고, 여러 한계가 있으며, 결국엔 그것이 틀릴 것이라는 걸 언제나 서두로 내걸면서도,


소위 '비평적' 해석은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내용에, 연출기법에, 하나의 소품 각각들이 가진 상징적 의미까지도


빌어와서 영화를 하나의 거대한 수수께끼처럼 대하고, 그것을 풀어내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리 말할 것이다.


"틀린 것은 알지만, 모두의 해석이 맞은 것이다."


적어도 이런 그들의 태도가 맞다 그르다를 논할 수가 없는 것이,


애초에 문명 이후의 몇천년의 진화과정을 거쳐, 그리고 수십년의 성장과정을 거쳐


DNA든 정신에든 박혀버린 문명적 본능이란 것이 있다면


그런 것일테고, 오히려 그렇기에 예술가는 언제나 그로부터 멀어져서


수수께끼를 내는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게 된다.



영화를 수수께끼로 규정하려는 자들. 관객과 영화 사이에 놓인 더 먼 거리.


그 거리는 관객들이 만드는 것일수도, 오히려 그 덕분에 감독이 만들 수 있는 영화의 특색일수도 있다.


그 거리를 좁혀라. 어떻게든 좁히고, 어떻게든 그 의미를, 그 가치를 찾아내라.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어떤 식으로든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거리는 좁혀지지 않기에 충분히 멋진 거라고 인정되고 있다.


이것은 상투적인 것이며 전통적인 것이다.



어떤 비평가에게 영화라는 매체 그 자체는 어떤 거대한 비밀을 품은 신이 된다.


신인줄 알았던 인간은, 저 먼 거리에서 뒷짐을 진 채로 무수한 해석의 시도들이 낳아대는


의미의 연쇄들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평가하는 자는 보는 자이지만, 예술가는 그 연쇄들을 다시금 위에서 바라본다.


애초에 풀릴 수 없는 수수께끼였고, 사실은 수수께끼가 될 필요도 없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은 비밀인 채로.




3.하지만 그럼에도 이 거리들을 빌미로,


그를 거만한 예술가 내지는 신적인 창조자로 생각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가 다루는 소재들.


그것들은 언제나 슬프고 밑바닥에 있으며 버려지고 찢겨지고 고통받는 것들에 관한 것이다.


그는 결코 그것을 위에서 굽어보지 않는다.



카메라는 그보다도 가격이 싼, 낡아 찢어진 소품들 하나하나 소중하게 담아내고,


비록 그 원본이 아닌 것은 알지만서도, 원본에 닿을 수도 없는 고통의 표정들 하나하나를 담아내고자 한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 누구도 그 사람들을 대신해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버닝의 주제가 '오늘날 젊은이에 관한 영화'라고 했을 때조차,


우리는 그 젊은이들이되어 그들을 대변할 수 없다.



영화의 거리는 이런 곳에서 또 효과를 발휘한다.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이며, 고통은 고통일 뿐이다.


이것은 영화의 의미가 해결되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그 고통보다 더욱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한 순간도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해결되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이라는 말은 단순한 의미해석의 호기심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에 확장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해결을 커녕 그 문제조차 속 시원히 함부로 말할 수 없는데서 나오는 그런 전전긍긍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제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실제를 담아내려고 하고 있고,


그럼에도 이 영화가 찍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은 실제일 수밖엔 없다.


그것은 어떤 본질적이고 운명적인 한계다.


그것은 매체를 떠나 이 세상보다도 더 높은 질서의 한 가지에 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을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그 불쾌함. 그래서 모든 문제가 생긴다.


왜냐하면 존재하지 않기에 그 영화가 찍어내지 못한 실제는 실제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는 것 앞에서 그 전전긍긍.


이것은 여운이라는 말로 남을 것인데, 그것은 어떤 취미(Taste)의 형식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전율이다, 허덕임과 같은 전율이다.





4.그의 영화에서 빌어올 수밖에 없는 문학적 장치들의 사연은, 그래서 두가지 높이로 결정된다.


그 시선은 어떤 시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보다 더욱 하늘 높이 올라있고,


또한 현실의 당사자들보다 더욱 가까이 당사자들을 보지 못해 땅으로 숨어버린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그 어느것도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보지 못 했고, 보지 못 할 것들이 여전히 몸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이다.


그것은 그 기분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고 싶게 하면서도,


결국 그 해결을 못 보기에 모든걸 사라져버리게 하는.


뭔가 만들어내 뜨겁게 아프다가도 이내 타버리는 불과 같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색


오히려 그것을 규정하는 몇몇 단어들에 의하여,


현실의 있는 그대로의 폭력성을 보인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며


또한 정치색이든 어떤 메세지든 분명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단지 그 모든 것을 말하지 않고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그 '괴물', 그것이 어떤 이름이든간에 도대체 거대한 것들, 알 수 없는 것들,


거부할 수 없는 것들이 그 수많은 '나'를 삼키러 왔을 때,


그것을 담아내려고 한 순간, 그 '파격성'은 그것을 못 담아낸 하나의 부끄러움이요,


그 메세지는 도대체 웅성거리기만 할 뿐 닿질 못하는 수수께끼의 답과 같은 것이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그 앞에 절박하다.




5.따라서 이 영화는 명작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지니고 있다.


죽어버리거나 태워버려서 영화가 끝나버리거나 아니면 글을 끝마치거나.


그 불씨가 사그러들 때, 그 대체 '알 수 없는' 안절부절함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의 불을 벌벌 타오르게 하다가 결국 제 풀에 지쳐 사라져버릴 때.


'2018'이라는 작품 뒤에 박힌 이 세련되어 보이는 년도가 먼 훗날,


낡은 숫자가 되어서 이 불을 다시 일으키는 것조차 두려울 때,


그 때 이 영화는 나한테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Posted by Joshua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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